신의 빛을 빛내라
하늘의 편지 제651호 발행: 2002년 8월 1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와 생명 말고는 뭐가 있지? 또 뭐가 있지?
생명을 나와 연관지어 보아라. 아마도 너는 생명, 그리고 네가 살고 있는 삶이 어떻게든 나와는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신은 한 장소에, 생명은 다른 곳에, 또는 생명과 나는 두 가지 다른 경로에 있으며, 너는 한 번에 한 개에만 동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생명을 하나의 덮개로 생각하라. 그것은 어떤 것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이 덮고 있는 것, 또는 겉보기에는 내가 가려지는 것 같다. 그러나 생명이 덮는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의 사랑과 신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며 나온다.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너는 또한 에센스를 모든 것의 요점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너는 항상 사물의 요점을 알고 싶어 한다. 이제 나는 너에게 말한다. 나다(I am). 나다(I AM).
내가 본질이라면 나는 본질이다. 내가 물질의 핵심이라면, 나는 물질의 핵심이다. 물질의 핵심은 물질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이다. 내가 그것이다(I am that).
물질은 덮개보다 훨씬 큰 것에 덧씌워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겉보기보다 더 많다. 너는 확실히 그렇다. 너는 모든 사람이 생각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너의 각성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잘 알기 시작함으로써 일어난다.
심지어 너의 언어도 덮개다. 문제가 생기면 “무슨 일이야?”라고 말하고, 따라서 너는 내면의 가슴보다는 오히려 외부를 덮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공표한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라. “여기 빛은 뭐지?”라고 생각해 보아라. 물질은 명백하다. 빛은 언제나, 너에게는 아니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어떠냐. 그저 진리를 공표하는 것이 어떠냐. “나는 빛이다. 너는 빛이다. 이 모든 것이 빛이다. 빛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너에게 환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네가 구체적인 것을 원할 때 너무나 추상적이다. 그러나 너에게 더 가까이, 더 많이 알도록, 더 많이 접촉되도록 가져와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것은 무엇인가?
아기에게 딸랑이는 추상적이다. 손을 내밀어 입에 넣고 그것을 받아 흔들고 또 흔들면서 그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아기는 딸랑이의 본질을 이해한다.
너희들은 모두 그렇게 했다. 만약 딸랑이와 다른 모든 외부 빛의 발현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빛 자체로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넌 할 수 있다. 빛으로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사랑으로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아름다움으로도 똑같이 할 수 있다. 나랑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사실, 너는 이미 사랑과 빛 그리고 그것들과 어울리는 모든 것을 흡수한다. 너는 항상 그것들을 흡수한다. 너는 아직 사랑과 빛을 너의 자각으로 흡수하지 못했을 뿐이다. 너는 외부의 징후를 흡수했고, 그 밑의 핵은 놓쳤다. 너는 사랑과 빛을 본질이라기보다는 분리된 입자로 보아 왔을 것이다.
일단 본질을 알게 되면 전체를 알게 된다. 겉의 포장은 전체가 아니다. 전체성은 외형에 있지 않다. 그것은 본질에 있다.
우리는 같은 전체성을 공유한다. 우리는 같은 빛을 공유한다. 우리는 모든 빛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동등하게 모든 빛이 너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는 모든 빛이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 그럼, 나의 빛으로 더 가까이 오너라. 그것이 또한 너의 것이라는 받아들임으로 더 가까이 오너라.
너는 단지 내 빛의 아주 작은 것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너는 그것의 모두를 가지고 있다. 네가 빛내기 위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도대체 왜 내가 너에게 나의 빛을 빛내라고 요청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