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들을 여는 방법
하늘의 편지 제881호 발행일: 2003년 3월 19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의견은 판단이다. 네가 누군가보다 키가 크다는 것은 너의 의견이 아니다. 그러나 키가 큰 것이 더 낫다거나, 더 작은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너의 의견이다. 네가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더 많다거나 더 적다고 고려하는 무엇이든 너의 의견이다. 세상이 너에게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의견이다. 네 앞에 보이는 것과 네가 과거에 본 것을 보면, 너는 이런저런 것을 첫 번째, 두 번째 혹은 마지막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네가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과 네가 모를 때 또 다른 것을 아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완전히 겸손하지는 않다.
나는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네가 항상 선한 것과 옳은 것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판단을 회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네가 열린 마음과 열린 가슴으로 일어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
설령 의견이 판단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의견과 선호도를 구분해야 한다. 네가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할 때 너의 목소리 톤을 주목하라. 너의 코 모양에 주목하라. 그리고 너는 네가 선호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호흡으로 의견을 진술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식들아, 너희는 세상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구나.
의견을 주는 것은 일종의 집착이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집착이, 심지어 결함의 집착이 될 수 있으며, 그러나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착이다.
사실, 어느 순간, 너는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 알지 못한다. 너는 그것이 너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지도 모르지만, 너에게 보이는 것이 항상 사실인 것은 아니다. 또한, 사실은 항상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네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너는 의견으로부터 떨어져야 할 수도 있다. 의견은 별로 가치가 없다. 그것은 헤어스타일과 같다.
아니면 너의 의견이 오고, 그 의견이 있고, 네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제 너는 그것을 혼자 간직할 수 있다. 이것이 너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그것이 어떤 개방성을 위한 길을 열어줄 것인가? 어쩌면 너는 그것에 대해 침묵할 때 이런 식으로 너 자신의 의견을 더 잘 듣게 될 지도 모른다.
깨끗함이 경건함 옆에 있다는 격언은 불결함이 경건함 옆에 있을 수도 있기에 하나의 의견이다. 어떤 것이든 경건함 옆에 있을 수 있다. 가난이 경건함 옆에 있을 수 있다. 부가 있을 수 있다. 경건함 옆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경건함 옆에 있을 수 있다. 제한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의 핵심에 도달했다. 의견은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라.
너는 네가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너의 생각에도 적용된다. 그것들은 무제한으로 공급된다. 너는 이제 열려 있고 이전 항목에 덜 집착을 갖게 된다.
이것은 가슴을 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어떤 경우에는 가슴을 닫고, 물러나라고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불평등을 믿을 때, 너는 가슴을 닫는다. 평등을 믿으면 가슴이 저절로 열린다. 다양성이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견들은 대부분 그렇게 많은 다양성만이 허용된다고 말한다. 의견들은 분리시킨다. 진실은 분리시키지 않는다.
네가 덜 혹은 더 크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존재 안에서, 같은 가슴이 뛴다. 나는 너의 가슴뿐만 아니라 다른 가슴에도 살고 있다. 자신의 가슴을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가슴을 알아야 한다.
너의 시야에서 어떤 가슴도 배척하지 마라.
너의 것이 다른 이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이 그것을 열기보다는 오히려 너의 가슴을 격리하기 때문이다.
가슴들을 여는 자가 되려면, 먼저 너 자신의 가슴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