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얼마나 멀리 도달했는가
하늘의 편지 제880호 발행일: 2003년 3월 18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세계의 측정치는 측정치일 뿐이다. 가슴의, 너의 가슴의 측정은 잴 수 없다. 그것은 광대하기에 헤아릴 수 없다. 광대한 정도를 측정할 수 없다. 무한은 측정할 수 없으며, 노트북에 메모할 숫자를 지정할 수도 없다. 무한의 방대함은 인간이 만든 어느 저울도 넘어간다. 모든 저울은 인간이 만들었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어떤 도구로 측정할 수 있겠느냐? 어디서 측정할 수 없음이 씌어질 수 있느냐? 어디서 측정할 수 없음이 유지되느냐? 어떤 공간 속에 그것을 맞출 수 있느냐? 무엇이 그것을 담을 수 있느냐? 무엇이 그것 없이 있을 수 있느냐?
광대한 온도계에는 꼭대기가 없다. 도달할 정상이 없다. 무한의 광대함에는 봉우리가 없다. 그것이 떨어질 곳이 없다. 표시할 수 없다. 무한이라는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 사랑, 진실, 기쁨, 신이 그 경우이다.
크림이 우유의 꼭대기에 정착하면서 걷어내질 수 있다.
광대무변한 상태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랑의 싹틈과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생명과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모든 것에 스며들고, 분리될 수 없는 것을 너는 어떻게 측정하느냐?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측정될 수 있다. 육체의 시작과 끝은 알 수 있지만, 영(spirit)은 태어나지도 않고 영은 떠나지도 않는다. 도착하거나 떠나는 것은 몸이다. 그래서 너는 죽음을 계속 믿게 된다. 죽음은 단지 물질적인 표기인 반면, 영의 생명은 표기가 아니다. 영만이 생명을 갖는다. 영의 비존재란 없다.
우리는 가슴이 헤아릴 수 없음을 측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너의 가슴은 진실의 가장 좋은 지표이지만, 진실은 또한 측정할 수 없다. 너는 오직 네가 있는 곳으로부터 진실을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 공간과 시간의 특정 지점에서만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측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한계가 없는 것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것은 대답할 수 없는 부정확한 질문을 나타낸다.
측정치 외에 표준은 무엇인가?
시간당 마일은 측정할 수 있지만, 영혼의 속도는 미터법을 넘어선다.
이런 식으로 측정하면 생명과 생명체의 모든 부속물이 얼마나 간단한가!
네가 접근해서 측정들을 잴 때, 너는 단지 저울이나 자의 선들로부터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측정할 물질적인 것을 요하고, 그것이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위한 측정용 줄자는 없다.
너는 일의 시작과 끝을 확인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권위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네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환영이다. 하지만 여전히 너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환영이라고 생각한다.
가슴은 환영을 감지하는데 능하다. 우리는 가슴이 환영을 균형 잡는 저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슴의 속도는 대개 세상에서 권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가슴은 눈금이 아니라 센서이다. 우리는 내가 너의 가슴과 조율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맞춘다. 내 가슴과 보조를 맞춰라. 그것은 그 옆에서 달린다. 내가 말하는 가슴은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감정은 유한하다. 가슴은 무한하다.
많은 차원이 있고, 여전히 네가 거주하는 곳은 무차원이며, 너는 차원이 없다.
진술이 전적으로 사실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어의 측정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실은 측정할 수 없고, 묘사할 수 없으며, 지도화될 수도 없고, 단편화될 수도 없고, 식별될 수도 없고, 단어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잡을 가치가 있는 것은, 너의 손이 잡을 수 없다.
판단은 측정치이며 항상 거짓이다. 거짓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림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겉만 훑어본다. 그것들은 너무 많이 빼먹는다.
그리고 너는 표면 너머에 있다. 너는 깊은 곳으로 달려가서, 땅과 하늘을 가리고, 헤아릴 수 없는 천국에 이르게 된다. 너는 지금 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