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부
양심(良心)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私心)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發動)하는 욕심(慾心)이다. 원래(原來) 인성(人性)의 본질(本質)은 양심(良心)인데 사심(私心)에 사로잡혀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敢行)하게 됨이니 사심(私心)을 버리고 양심(良心)인 천성(天性)을 되찾기에 전념(專念)하라. (『대순진리회요람』, p.19)
마음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등을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이다. 상제님께서는 마음의 본질과 작용에 대하여 “사람의 마음은 신의 중요한 용사기관이요, 신이 출입하는 문이며 왕래하는 길이다. 추기를 여닫고 문호로 출입하며 길로 왕래하는 신은 혹은 선하고 혹은 악하니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쳐라. 추기요 문호요 도로인 나의 마음은 천지보다도 크니라(心也者 鬼神之樞機也 門戶也 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惑有善惑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행록 3장 44절) 하셨다. 그동안 어떤 성인(聖人)도 밝히지 못한 인간의 마음과 신(神)의 작용에 대한 깊은 통찰의 말씀이다.
마음은 일신(一身)을 주관하여 전체를 통솔 이용하니, 일신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은 오직 마음에 매여 있는 것이다. 몸은 마음의 표현이다. 사람의 모든 언어 행동은 다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의 두 가지가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고, 사심은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이다.
양심(良心)은 어진 마음이다. 영어로 양심은 ‘conscience’이다. ‘conscience’는 ‘con+science’의 구조로 접두사 ‘con-’은 ‘함께’라는 뜻이고, ‘science’는 ‘과학’이다. ‘science’는 라틴어 scientia(알다)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conscience’는 ‘함께(con) 안다(science)’는 뜻이다.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생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양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양심을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양심이라는 용어는 『맹자』 「고자 상」에서 인의지심(仁義之心)이라는 의미로 처음 쓰였는데, 맹자는 하늘에 의해 천명으로 인간에게 부여된 본성인 양심이 본래 선(善)한 것으로 보았다. 동양의 유가적 전통에서 양심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진 선(善)한 본심’을 의미한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양심의 어원이 ‘함께 안다’는 데로부터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안다는 의미로 인식하여 양심을 ‘하느님의 목소리’로 이해하고 있다. 「사목헌장(司牧憲章)」 16항에는 “인간은 양심 속 깊은 데서 법을 발견한다.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준 법이 아니라 인간이 거기에 복종해야 할 법이다. 이 법의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며 행하고 악은 피하도록 사람을 타이르고 필요하면 ‘이것은 행하고 저것은 피하라.’고 마음의 귀에 들려준다. 이렇게 하느님이 새겨 주신 법을 인간은 그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므로 이 법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며 이 법에 따라 인간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안방이요 인간이 저 혼자서 하느님과 같이 있는 지성소(至聖所)이며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쓰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중용자잠(中庸自箴)』에서 “군자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을 때도 두려워하여 감히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상제께서 조림하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에게 양심은 도심(道心)이고, 그 근원은 인격적 하늘인 상제의 목소리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인간을 양심을 통해 상제와 대화하고 교감하는 존재로 보았다.
동양에서 천명(天命)으로 인간에게 부여된 본성이 양심이라는 것과, 천주교에서 양심을 ‘하느님의 목소리’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인간을 양심을 통해 상제님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존재로 보는 다산의 양심론은 모두 양심을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라는 대순사상의 양심론과 서로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유가에서 공자는 인성의 본질을 인(仁)으로 보았다. 맹자는 여기에 의(義)를 더하여 인의(仁義)를 강조하면서 인간 본성의 4덕을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제시하였다. 한대(漢代)의 동중서(董仲舒)는 4덕에 신(信)의 덕목을 추가하여 인의예지신을 인간의 떳떳한 도리, 즉 오상(五常)이라 하였다. 도전님께서도 “국가 사회란 충·효·열을 강령으로 하여 인·의·예·지·신으로써 이루어진 각 족속의 집단이다.” 하시고, “원·형·이·정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는 인도지상(人道之常)이라고 옛부터 성현들이 일러왔다.” 하셨다. 이로써 인성의 본질인 양심의 다섯 가지 덕목은 인의예지신이라 할 수 있으며, 인의예지신을 실천하는 것이 곧 양심을 구현하는 길이다.
상제님께서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교법 2장 45절)라,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결실을 맺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인의(仁義)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편애하거나 편오하지 않는 것이 인(仁)이고,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르다 하지 않는 것이 의(義)이며, 너무 강하게 하거나 너무 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예(禮)이고, 방자하게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지(智)이며, 재물을 남용하거나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신(信)이다(不受偏愛偏惡曰仁 不受全是全非曰義 不受專强專便曰禮 不受恣聰恣明曰智 不受濫物濫欲曰信).”(교법 3장 47절)라고 하셨다. 이런 마음의 경지가 도심(道心)이고 양심이다.
상제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천성(天性)이자 고대의 요ㆍ순ㆍ우임금이 서로 전한 심법(心法)이 양심이다. 『서경』 「대우모」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일(精一)하게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하였으니, 그 중(中)이 도심이요 양심이다. 『중용』에 “희로애락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자리가 중(中)이고, 감정이 일어나되 절도가 있는 것을 화(和)라 하니, 중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는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道)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중(中)의 자리가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 자리이다.
상제님께서 김형렬 종도에게 『대학』의 한 구절을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고 하신 성구인 “만약 한 신하가 있어 꿋꿋하고 별다른 재주는 없지만, 그 마음이 어질고 너그러워 남을 용납하는 정도가 남이 가진 재주를 자기가 가진 것처럼 여기며, 남이 어진 것을 마음에 좋아하기를 자기 입에서 나온 것보다 더하다면, 이는 진실로 남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것이며, 또한 이로울 것이다. 남이 지닌 재주를 싫어하여 시기 질투하며, 남이 어진 것을 거슬러 이루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진실로 남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니, 우리 자손과 백성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위태롭게 할 것이다(若有一介臣 斷斷兮 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不啻若自其口出 寔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尙亦有利哉 人之有技 媢疾以惡之 人之彦聖 而違之 俾不通 寔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교운 1장 57절)에서 남이 가진 재주를 자기가 가진 것처럼 여기고, 남의 어진 성품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이 양심이다.
도전님께서 “사(私)는 인심(人心)이요 공(公)은 도심(道心)이니, 도심(道心)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 하시고,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道)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 하셨다. 항상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다와 같은 마음이 도심이며 양심이다. 늘 내 안에 항존(恒存)하는 양심을 자각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도인이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훈회와 수칙에서 훈회 1번이 ‘마음을 속이지 말라.’이고, 수칙 3번에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니, 양심을 속임과 혹세무민하는 언행과 비리괴려를 엄금함.’이라 하였으니, 수훈(垂訓)의 진법의 핵심 요결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인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도인은 언제나 양심을 속이는 일이 없이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도하여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여야 한다.